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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문승현 기자     편집  2021-02-23 07: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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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바이올린 선율은 평온하다. 따뜻한 엄마 품에 안긴 유년의 단꿈이다. 오보에는 애잔하다. 하프의 변주와 함께 바이올린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격정적으로 휘몰아친다. 묵직한 첼로가 비장미를 더한다. 마침내 현악기의 소리들은 세상의 끝으로,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순수 고전예술의 문외한도 안다는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인터메조(intermezzo)다. 아리아보다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 간주곡에 19세기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치정과 결투,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 서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빈센조'에서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인터메조가 이목을 잡아 끈다. 주인공 빈센조로 분한 배우 송중기의 아름다운 외모와 현란한 액션보다 더 날카롭게 미장센을 파고든다. 소재는 가볍지 않다. 전체 줄거리가 드러나지 않았으나 재건축·재개발이 주요 골격 중 하나다.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가 조직을 등진 채 한국으로 돌아온 건 '금가프라자' 건물에 몰래 숨겨둔 15t의 금을 회수하기 위한 허울뿐인 재건축 계획 때문이다. 하지만 그 건물엔 개발을 반대하는 세입자들이 살고 있고 극 전개상 금가프라자를 포함해 인근 지역 땅과 건물을 사들여 대규모로 개발하려는 '바벨건설'과 대립구도가 만들어진다. 전직 마피아의 노후 설계, 영세 서민들의 생업, 기업의 이윤 추구가 물고 물리는 구조인 셈이다. 각자의 개별성이 치열하게 부딪는 순간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인터메조가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터져나오고 현실과 가공의 세계는 혼재된다.

현 정부 들어 25번째 부동산 정책이라는 전국 주택공급 확대기조의 2·4대책 이후에도 대전·세종 아파트는 부르는 게 값이다. 매매-전세가는 상호 보완하며 널을 뛴다. 재건축 예정이라는 일부 아파트에는 너도나도 몰려들어 로또청약을 노릴 기세고 입주도 하지 않은 아파트의 분양권은 '묻고 더블'이 기본이다. 한 시간여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린다'는 드라마 속 정의(正義)의 카타르시스가 끝나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고급한 선율마저 이내 잦아들 것이다. 이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문승현 취재3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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