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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우보만리

편집  2021-01-15 07:05:20

강병석 남대전농협 조합장

2021년 흰 소의 해가 밝았다. 역사적으로 소는 인간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단순한 가축의 의미를 뛰어넘어 한 식구처럼 여겨진다. 소는 농사 짓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노동력일 뿐 아니라 운송수단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소에 관한 속담이나 이야깃거리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직하고 순박하며 여유로운 천성의 소는 세시 풍속과 설화, 속담 등에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고, 시문, 그림, 문학 등의 소재로도 애용됐다. 과거 소는 시골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꼽힐 정도로 농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자녀들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재산이기도 했다.

소 한 마리면 자녀 대학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소는 죽어서도 쓰임새가 다양하다. 부속물인 뿔, 가죽, 기름, 고기 등은 실생활에서 폭 넓게 이용됐다. 고기는 음식으로 먹고 뿔은 쪼개 화각공예품을 만들었으며 가죽으로 북·장구·소고 등의 악기를 만들었다.

'소는 하품 밖에 버릴 게 없다'는 말이 소의 유용한 쓰임을 알려준다. 고 정주영 현대회장이 소 한 마리를 끌고 가출해 66년의 세월이 흐른 뒤 소 판돈 70원을 갚기 위해 1001마리의 소를 몰고 북한의 고향을 찾은 일은 유명한 일화다.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통해 잊고 있던 소와의 추억이 소환되기도 했다.

과거 학창 시절 소를 끌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른 아침 소를 끌고 등교하다 들에 소를 매어 놓고 하굣길에 소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여름방학에는 소에게 꼴을 베어 먹여야 했기에 어린 손에 낫을 잡고 풀을 베었던 기억, 겨울이면 볏짚을 작두로 썰어 쇠죽을 끓이던 모습은 이제 우리 추억 속에만 남았다.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이제까지 당연하게 누렸던 소박한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항상 숨 쉬는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지 못하듯 그동안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우보만리(牛步萬里)라는 말이 있다. 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걸어서 만리를 간다는 뜻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우보만리처럼 행동한다면 주변에서 놀림이나 따돌림을 당할지 모른다. 우생마사(牛生馬死 )라는 말도 있다.

큰 홍수가 나서 소와 말이 급물살에 떠내려가게 되자 몸도 빠르고 잘 달리며, 수영도 잘하는 말은 자신의 수영 실력을 과신해, 물살을 거슬러 헤엄쳐 오르다 지쳐 결국엔 죽고 말았다. 하지만, 우직한 소는 우보만리의 마음가짐으로 물살에 몸을 맡기고, 순리대로 순응하며 헤엄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순리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우보만리의 마음가짐으로 대처한다면 말처럼 어리석은 결과는 초래하지 않을 듯하다. 지금은 경제도 어렵고 우리 서민들의 삶은 더 어렵다.

어려운 시대에 나만 살아보자고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다. 권모술수는 당장 위기는 피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우직한 소처럼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목표를 향해 걸어간다면 만리 아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세계 경제의 중심지인 미국 월스트리트의 상징은 황소다. 황소가 뿔로 올려치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불 마켓(Bull Market)은 주식 강세가 예상되는 시장을 뜻한다. 올해는 경기가 회복돼 힘찬 황소의 기운을 느낄 수 있길 기대한다.

강병석 남대전농협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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