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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문학] 마스크 쓰고 산책하기


 편집  2020-10-22 07:32:58  

김해미 소설가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마스크를 챙긴 후 집을 나선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바깥일이 아예 없는 요즈음,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우리 동네에는 산책 코스가 몇 군데 있다. 그중에서 비교적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소나무 숲과 유아 체험 숲이 있는 코스가 나는 제일 좋다. 이 곳에서 혼자 오붓하게 하루를 여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다.

요즈음은 전날 써놓았던 원고를 가지고 가서 퇴고하는 시간이 늘었다. 좀 더 일찍 눈이 떠지는 날에는 아예 읽어야 할 책들도 동행한다. 최근에 책을 낸 친지나 후배들의 파릇한 신간도 있지만, 그동안 사놓고 못 읽은 책도 꽤 많다. 일단 50쪽 정도 진도가 나가면 성공이다. 독서에 탄력이 붙으면 나머지는 돌아와서 계속 읽으면 된다.

올 봄에는 이곳에 산딸기가 어찌나 많이 피던지…. 여태껏 그리 자주 오르내린 곳이건만, 산 곳곳에 산딸기 군락지가 이렇게 많은 것도 처음 알았다. 진달래, 노란 매화, 찔레꽃, 산나리가 차례로 피고 지자 어느 날 내 눈에 띈 빨갛고, 앙증맞은 열매. 올해는 아마도 내 생애 가장 많은 산딸기를 만난 해인 것 같다.

산딸기 있는 곳엔 뱀이 있다고/ 오빠는 그랬지만 나는 안 속아/ 내가 따라갈까 봐 그랬던 거지. 동요로 널리 알려진 산딸기는 새콤달콤한 맛과 앙증맞은 생김새로 내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손등과 팔목에 수없이 가시에 찔리고 긁혀, 상처가 생기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 산딸기 사랑을 멈췄다. 오빠들이 왜 동요를 만들어서까지 누이를 보호해야 했는지도 아프게 깨달았다. 이곳의 그 누구도 산딸기에 왜 그토록 무관심한 지도.

오늘 아침, 산길 초입에서 두 손에 보라색 가지를 양껏 쥔 남자를 만났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오래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남자는 "좀 드릴까요?" 하더니만 유난히 윤기 나는 싱싱한 가지 다섯 개를 건네주었다. 요즘 야채 값이 너무 비싸 남편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가지나물도 몇 번 못 해주었다. 언뜻 보니 본인의 손에 있는 것보다 내게 준 것이 더 많다. "어디에서 농사를 지세요?" 그냥 넙죽 받자니 민망해서 물었더니, "저 위에서요." 대답하곤 바삐 가버린다. 앗, 그러고 보니 내가 미처 마스크를 쓰지 못했다. 혹 그래서 서둘러 가 버린 건 아닐까? 그의 등 뒤에 대고 감사의 말을 던지고 산에 올랐다.

숲속에서조차 마스크를 쓰는 것은 정말이지 고역이다. 나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 곳으로 산책로를 선택한다. 중간중간 나 혼자 있을 공간을 찾기 바쁘다. 좀작살나무의 신비한 진보라 색 열매를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이제 한참인 꽃댕강나무의 향기를 맡을 수 없다면 왜 굳이 산에 오르겠는가? 식물들이 발산하는 피톤치드를 음미하지 않고는 산책의 의미 또한 없다.

아무래도 그의 밭이 궁금해 평상시 산책길에서 이탈해 탐색에 나섰다. 산과 과수원의 경계에 있는 작은 오솔길에 이르렀다. 짐작했던 대로 작년 가을부터 경작위반 팻말이 세 개나 붙어있던 길가 밭은 풀이 무성하다. 그런데 더덕 넝쿨이 시들해진 열 평 남짓한 과수원 옆 밭에는 아직 고추와 피망이 매달려있다. 그 바로 이웃에 아직 덜 자란 어린 가지 몇 개가 남아있다. 스무 포기 남짓 배추도 한참 물이 올랐다. 이곳이 바로 가지의 원산지인 듯했다. 모진 장마와 태풍에도 용케 버텨낸 식물들과 부지런한 도시농부의 손이 그렇게 귀하게 여겨질 수가 없다.

산책에서 돌아오자마자 남편을 위해 우선 가지 두 개를 꺼내 가지무침을 만들었다. 점심에는 잠시 다니러 온 아들애를 위해 삼겹살과 함께 가지를 구워냈다.

낯선 이웃으로부터 신선한 먹거리를 선물 받고, 식구가 모두 행복했던 하루. 방금 원고 한 편도 마무리가 잘 돼 내 손을 떠났다. 이래저래 오늘 산책은 대만족이다. 마스크만 벗게 되면 금상첨화겠다.

내일은 산책길에 산 넘어 머위 밭을 한번 둘러봐야지. 땅 주인이 조경사업을 시작했는지 며칠 새 소나무와 잔디가 심어진 밭. 급격하게 변화된 주변 환경 속에서 자연산 머위는 과연 새순을 피워냈을까. 김해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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