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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어쩌면 이제 우리는 리외가 돼야 한다

2020-05-27 07:13:46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코로나 이후 3개월 만이다. 몇몇 극장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극장이라는 공간은 공연이 시작되면 문이 닫히고 일정한 시간을 관객과 관객이 열을 지어 객석에 앉아 있어야 함으로 어찌 보면 가장 밀폐된 공간이다. 공연 재개에 따른 걱정과 염려들이 나온 이유였을 것인데, 다행히 아직 극장에서는 단 한 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연 극장들로서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일 것이다. 확진자가 극장을 다녀갔기만 해도 어렵게 문을 연 극장은 다시 기약 없이 문을 걸어 잠궈야 할 것이며, 공연계 전체로 그 파장이 확대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연극제가 한창인터라 대학로 극장에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극장출입구를 하나로 통일해 발열체크를 하고,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입장관객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기입한 후 마스크를 착용해야 객석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좌석과 좌석 사이를 비워두고 극장 안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고 있었으며, 공연 중간에 마스크를 벗고 앉은 관객 또한 보이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고 분주한 대학로 거리를 걸었다. 마스크를 쓰고 공연을 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어쩌면 극장이 도시의 거리보다 더 안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안정돼 가는 듯 보였던 국내 코로나19의 상황이 요 며칠간 다시 심상찮은 상황을 만들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전파와 역학조사가 불가능한 확진자 발생은 다시 일상으로 조금씩 복귀하고자 하는 희망에 찬물을 끼얹기 충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지 않은 감염자들에 대한 분노가 컸고 관련자들에 대한 혐오표현으로 확대되는 듯 보였다. 더군다나 지역사회 감염전파가 확실해 보였던 날은 고3을 중심으로 등교개학이 시작된 터라 무리하게 등교를 결정한 교육부에 대한 사람들의 원망도 있었다. 최근 대면강의를 시작한 나로서는 다시 시작된 지역사회 감염전파가 공포스러웠다. 발열체크를 하고 방역체제를 가동시키면서 수업을 했어도 내심 사회적 거리두기에 느슨한 마음이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모스크바에 사는 친구와 통화를 할 때도 한국은 코로나의 상황이 안정돼 간다고 자랑을 했는데, 그 느슨했던 마음이 은연중 만들어 낸 말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자주 거론됐던 작품 가운데 하나가 까뮈의 '페스트'다. 아파트 계단에서 발견된 죽은 쥐를 보고 의사 리외는 오래전 기억에서 사라졌던 페스트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페스트라는 역병이 잠식한 도시와 도시 사람들의 삶이 의사 특유의 객관적인 시선을 경유해 소설 속에 그려지는데, 무엇보다 페스트에 걸린 사람들의 병증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부분에서는 참혹한 역병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까뮈의 '페스트'에서 페스트는 결국 종식 된다. 이 소설의 핵심은 페스트의 가운데에서가 아니라 페스트의 종식 이후 사람들의 태도에 있기도 하다. 소설의 마지막에 리외는 페스트의 종식을 기뻐하는 사람들의 경쾌한 환호성을 듣는다. 의사 리외는 경쾌한 환호성이 영원한 것이 아니며 일상 속에 모습을 감추고 여전히 인간들을 위협하는 페스트의 존재를 인식하는 유일한 인물로 등장한다. 마지막 리외의 독백은 이러하다. "기쁨에 들 뜬 시민들이 모르고 있는 엄연한 사실, 페스트균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으며 끈기 있게 기다리다 언젠가는 다시 인간들에게 불행과 그를 통해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 자기 쥐들을 깨워 행복한 도시로 보내 거기서 죽게 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시대에 우리 모두는 어쩌면 리외가 돼야 할 듯하다. 지역 사회에 코로나 확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아도, 극장이 아무 일 없이 공연을 계속 하고 학생들이 별 탈 없이 등교를 하더라도 지금껏 경험한 적이 없었던 불행 가운데서 얻은 교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라는 말이 주는 서늘함은 이 교훈을 잊어버리는 순간 다시 찾아들 불행의 파장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태원을 중심으로 시작된 코로나 지역사회 감염전파가 준 교훈이 이토록 무겁고 슬프다.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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