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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밭춘추] 빛과 안개가 만나는 풍경

2020-01-17 07:48:26

▲김주원 극단 백 개 무대 대표...
연극을 하다 보면 연극의 모든 과정이 삶과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연극 자체가 인간의 삶을 모방하고 세상을 모방하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덕분에 내가 사는 풍경의 여러 군데에서 연극을 발견한다.

겨울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 대한이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한에 눈이 아닌 비가 내릴 정도였다. 소한을 시작으로 며칠간 겨울비가 내렸는데 그 바람에 대낮 세시에도 길거리가 어슴푸레 어두웠다. 그렇게 새벽도 해 질 녘도 아닌 한낮의 어두움 속에 서대전 네거리를 향해 계룡 육교를 넘어가는 길, 그 앞으로 뻗은 도로 위 차들이 제각각 불빛을 깜박이고 있었다. 맞지 않는 말이지만 마치 한낮의 야경을 보는 것 같았다. 부슬비가 수증기처럼 퍼져서 안개보다는 어설픈 뿌연 물기를 머금은 도로. 그 위로 자동차 불빛들이 반짝이는 그 풍경은 마치 어느 무대 같았다. 포그머신으로 안개효과를 만들어 덮은 무대에 색색의 조명이 빛을 밝혀놓은 모습. 빛들이 안개를 가르며 제각기 길을 만들어낸 모습 등이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우리의 미래는 늘 안개에 가려져 있다. 미래를 장담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미래가 현재가 되는 순간까지 미래는 늘 예측 불가한 안개 너머의 것이다. 우리는 그 안개 덮인 길을 나아가며 각자의 빛을 내 자기의 존재를 알린다. 그 빛은 어느 때는 굵고 화려하게, 어느 때는 사라질 듯 가느다랗게 길을 만든다. 강렬한 붉은빛일 때도 있고, 형광등처럼 마냥 흰색일 때도 있고, 서늘한 푸른 빛일 때도 있다. 그 빛의 색과 형태는 무궁무진하고, 그 가능성을 믿는다면 어떤 빛이라도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그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빛들은 서로 만나 다른 색을 내기도 하고, 어떤 색 안으로 흡수되기도 한다. 모든 빛은 아름답고, 그것이 함께 할 때 더 아름답다. 그러나 그 모든 아름다움도 화창한 날씨 속에서는 제대로 색을 내지 못한다. 그 빛들을 더 또렷하고 빛나게 만들어주는 것은 뿌옇게 안개가 깔린 풍경이다.

우리가 자기의 삶을 그런 풍경 보듯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는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아마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또는 생각하는 것과 달리 꽤 아름다운 길을 달려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김주원 극단 백 개의 무대 대표 (극작가·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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