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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자와 낮은자가 만나 만든 글자 한글

2019-07-16 09:08:56


▲'나랏말싸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연합뉴스]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이야기를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나랏말싸미'는 이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 다만, 이 영화가 그리는 한글 창제 과정에는 기존에 우리가 잘 모르던 한 사람이 등장한다. 스님인 신미다.

세종(송강호 분)은 백성들을 위한 글자를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어려움에 부딪힌 그 앞에 아내 소헌왕후(故 전미선) 소개로 여러 언어와 소리글자에 능한 스님 신미(박해일)가 나타난다.

유교를 기반으로 들어선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왕과 숭유억불 정책의 조선에서 '천한 존재'로 여겨지는 스님의 만남은 처음부터 불꽃이 튄다. 이 둘을 이어주는 것은 애민 정신이다. 세종은 백성이 읽고 쓸 수 있는 자주적인 문자를 만들고자 하고, 신미는 선대 임금의 약속이라며 대장경판을 가지러 온 일본 승려들에게 "대장경판의 주인은 백성이다"고 말한다.

신미는 세종에게 소리글자의 단서가 팔만대장경에 있음을 알려준다. 신미가 이끄는 스님들과 세종의 두 아들 수양대군(차래형)과 안평대군(윤정일)은 우리 글자 만들기에 돌입한다. 산스크리트어를 통해 초성, 중성, 종성의 개념을 알게 되고 우리말 소리를 모은다. 이후 '글자는 무조건 적고 쉬워야 한다'는 원칙 아래에 발성 기관 모양을 본떠 글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실명 위기인 세종의 날로 악화하는 건강이 문제가 되고 외부에서는 신료들이 스님과 함께 글자를 만든다는 데 크게 반발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국 훈민정음이 완성된다. 이미 역사를 통해, 그리고 매일 쓰는 한글을 통해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영화의 메시지는 대사를 통해 직접 전달된다. "한자는 권력과 신분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거나 "새 문자로 지식의 독점을 깨야 한다"는 대사는 한글 창제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상기한다. 아무나 배우거나 쓸 수 없는 문자가 지배층의 헤게모니로 이용됐으나 언문이라는 새로운 표준이 우리 말 소리를 획일화하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음도 언급된다.

세종과 신미가 함께 한글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하나의 설을 채택한 것 같지만 막상 영화 내용을 보면 새 글자는 왕자들과 스님들의 도움을 받아 신미가 거의 다 만든 것으로 묘사한다. 세종이 한글을 단독으로 창제했다는 설이 굳어진 현재 이 같은 설정은 관객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할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과학적이고 쉬우며 무엇보다 애민 정신이 깃들어있는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벅차오른다. 특히 세종이 훈민정음 서문을 읽을 때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영화는 최대한 세트 대신 실제 공간에서 촬영됐다. 6개월 이상 문화재청과 해당 사찰을 설득해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유산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이 같은 공간에서 신미가 한글에 대한 힌트를 얻는 장면도 나온다. 최근 언론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철현 감독은 "실제 공간에 가보면 이미 도형적으로 훈민정음의 자모와 관련된 흔적이 널려있다"고 말했다.

세종대왕은 완벽한 군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아내 소헌왕후의 가족을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는 죄책감, 새 글자가 완성되기 전에 자신이 실명할지 모른다는 조급함과 두려움에 시달린다. 꺼져가는 생명력과 쓸쓸함 속에서도 새 글자를 만들겠다는 의지만은 마지막 불씨처럼 남아있다. 이 같은 세종의 인간적인 모습은 배우 송강호를 만나 극대화한다.

고(故) 전미선이 그린 소헌왕후의 얼굴에는 인자함, 강인함, 삶의 풍파, 남편에 대한 애정 등 모든 감정이 복합적으로 묻어난다. 무엇보다 그가 연기한 소헌왕후는 대장부이면서도 시대를 앞서갔다.

영화 속에서 소헌왕후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흥한다"면서 언문을 일반 여성들에게도 전파해 읽고 쓰는 것이 중요함을 알리고자 한다. 전미선이 직접 만들었다는 대사 "백성은 더 이상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도 가슴을 울린다.

극 중에서 나오는 소헌왕후의 죽음이 전미선의 비보와 겹쳐져 더 슬프게 다가온다. 영화가 다 끝난 뒤 나오는 "전미선 님을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자막처럼 관객들은 이 같은 소헌왕후의 모습으로 그를 영원히 기억할 듯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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