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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어른

원세연 기자 | 2019-04-19 07:03:14

1960년 3월 8일 오후.

대전고등학교 학도호국단 최정일 규율부장이 학생들을 향해 소리쳤다.

'내가 담을 넘을테니 모두 움직이자.'

교장 사택에 감금돼 있던 대전고 학생들은 최 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담을 넘었고, 거리로 뛰쳐나갔다.

자유당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나선 이들의 의거는 4·19 혁명의 단초가 됐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독재정권에 항거한 이날의 행동은 당시만 해도 사건이었다. 정권에 대항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경찰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았고, 짓밟혀 연행되면서도 자유당의 독재를 타도해야 한다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기성세대들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을 순수한 열정만 갖고 오직 정의감과 실천하는 양심, 행동으로 항거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고등학생들도 실천한 언행일치를 어른(원로)이라 불리는 문인들이 부정하고 있다. 대전시와 대전문화재단으로부터 향토예술인창작활동지원사업의 창작기금을 받은 7명의 원로문인들이 자기표절과 중복수록 등 비정상적인 출판을 한 행위로, 1600만원의 환수 조치를 통보 받고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이들은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환수를 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낼 수 없다는 이중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정의 수위도 옅어지고 있다. '잘못을 인정한다'에서 '억울하다'로 변주하고, '환수하겠다'에서 '고려하겠다'로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일부 문인은 '내탓'에서 '출판사 탓'으로 돌리며 책임 전가하는 모습도 목격된다. 답하기 곤란해 하는 원로들에겐 '전화를 받지 마라'는 코치(?)진까지 붙었다.

문인들의 성화에 어렵게 예산을 확보한 대전문화재단 직원들은 '제발 환수좀 해달라'고 애원하는 넌센스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국어사전에 적혀있는 '어른'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책임을 지지 않고 각종 이유와 변명만 늘어놓는다면 어른(성인)아이와 다를 바 없다. 서슬퍼런 독재정권 시절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자신의 말에 책임을 졌던 고등학생들에게 각종 핑계만 대는 부끄러운 어른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는가.

원세연 취재 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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