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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철하 문화산책] 매화 단상(梅花 斷想)

2019-01-11 10:21:28



10년 전 교토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친구를 만나 매화 분재 전시를 간 적이 있다. 우연히 받은 한 장의 안내장엔 400년 된 매화 분재 사진이 선명히 인쇄되어 있었다. 내륙의 바다라 일컫는 교토 외곽의 비와호(琵琶湖)를 지나 한 시간 여를 달려간 기차는 호수의 동북쪽 시가현 나가하마(長浜)역에 내렸다. 근대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풍스런 역이었다. 겨울의 쨍한 날씨와 함께 비와호에 닫기 몇 발자국 전 갑자기 몰아친 눈 폭풍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분매(盆梅)전이 열리는 곳은 처진 가지를 끈으로 한껏 들어 올린 정통 일본식 정원으로 메이지유신 시기 정치가들이 모여 차를 마시는 곳이라는 안내글귀를 읽었다. 매년 1월 중순에서 3월 중순까지 개최되는 전시회는 분재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크기와 박력감을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매화가 있었다. 겨울 한기속에서 뭇 꽃들에 앞서 피는 매화는 그 터진 줄기와 몸통에서 신선한고 청량한 향기를 내뿜고 있었다. 대담한 서예작품과 꽃꽂이, 다도가 엄선된 90여 본의 전시는 단순히 화려하기보다는 그 풍격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청초하면서도 신선한 그 향기는 오미(五味)가 가득한 매화차를 마시며 다음과 같은 대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에서 매화는 엄동(嚴冬)의 겨울이 끝나고 봄을 알리는 첫 번째 꽃으로 청초한 아름다움과 도취시키는 향기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인간과 신의를 표현한 상징으로 무사의 정신과 일치했다. 무로마치 시대부터 무사계급에서는 매화문장을 애용하기 시작했는데 전국 시기에는 많은 호족이, 에도시대에는 귀족과 막료들이 앞 다퉈 매화문장을 가문으로 삼았다. 가혹한 전국시대, 무사들은 분재를 사랑했다. 차와 마찬가지로 매일 계속되는 싸움 속에서 분재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한 번 생긴 친근감은 평화로운 시기에도 지속되어 에도시대에는 원예 붐이 일었다. 쇼군으로부터 하사받은 다이묘들의 저택에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지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권위를 드러냈다. 에도는 거대한 정원도시가 되었다. 태평성대에는 무사들이 새롭게 할 일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무사들이 원예에 힘쓴 것은 쇼군이 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고 원예는 무사의 교양이 되었다. 진귀한 식물을 재배하고 이를 쇼군에게 갖다 바치는 것은 그들의 취미가 되었다. 이러한 무사의 원예 붐이 서서히 상인과 일반 주민에게로 확산되면서 원예 붐이 일었던 것이다. 오사카 성 앞에 있는 매화 정원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상징한다. 미천한 신분에서 전국을 통일한 히데요시는 오사카의 서민의 마음속에 영웅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수 십년간 자신이 원하는 분재를 만들기 위해 애정을 쏟는 정원기술을 생각하면서 어쩌면 그것이 인간성의 과도한 집착과 변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기술과 경험, 지식이 그들의 정신이 되고 그것이 정치적 이념의 어떤 것으로 변형 되었을 때 우메보시를 넣은 매화차처럼 맵고 씁쓸한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동북아에서 근대의 경험이 그러하다. 매화꽃 하나, 매화 그림 하나에도 취미와 기호, 시대와 정신, 그리고 정치가 작동한다. 그러나 정치와 취미를 넘어선 예술가의 도도한 정신, 그 초월을 일상적으로 하는 자가 예술가가 아닌가 한다. 겨울처럼 죽고 봄처럼 다시 살아나는 그러한 매화를 생각해 본다.

류철하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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