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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의 음악산책]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

2018-07-13 08:59:04



2000년대 불었던 세계화의 바람이 엊그제 같은데 20년도 되지 않아 미국의 트럼프로 상징되는 국수주의와 자국우선주의 물결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서양 음악에서 자국의 감성과 애국심을 결합한 움직임을 국민악파 또는 민족음악이라고 한다. 동유럽과 러시아 등을 중심으로 19세기 후반 활발했던 이들 악파의 대표적인 한 사람을 꼽으라면 바로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다. 음악 작품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이 있다면 바로 그의 초상화다. 작곡가의 초상화와 이름을 연결해 맞추는 시험 문제에 한 학생이 무소르그스키를 노숙자 모습, 루돌프 코라고 외워서 정답을 적었다고 했던 에피소드도 새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그 루돌프 코가 실은 알콜 중독의 영향임을 알았을 때 격렬한 인생의 부침(浮沈)이 마음을 짠하게 했다.

무소르그스키는 1839년 3월 21일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으나 가문의 전통을 이어 사관학교를 지원했다. 졸업 후 군 복무를 하면서 당시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알렉산드르 보로딘을 비롯해 세자르 큐이, 밀리 발라키레프 등 여러 유력 음악가를 알게 되고 그 중 발라키레프에게는 작곡을 배웠다. 초기에 발라키레프에게 작곡을 배운 것 이외에는 거의 독학으로 실력을 연마한 그는 군을 떠난 후 작곡에 전념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전성기도 잠깐, 농노 해방으로 집안이 몰락하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알콜 중독에 빠진다. 이후 생계 수단이던 공무원 자리에서도 쫓겨나며 굶주림과 병고 끝에 42세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의 작품이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뛰어난 작곡가들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별히 인상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그 만의 독창성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장점은 바로 그가 음악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듬어진 화성 체계와 음악 어법을 구사하는 다른 작곡가와 달리 그는 관습에 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대담한 작곡법과 투박하고 거친 질감을 사용해 당시 민중의 삶과 정서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한다. 한때는 다소 조악한 그의 작품이 림스키 코르사코프나 쇼스타코비치 등에 의해 좀 더 세련된 어법으로 대폭 수정된 곡들이 더 자주 연주되기도 했지만 오늘 날에는 최소한의 수정만을 가한 원전판이 그대로 연주되고 있다.

무소르그스키가 보여준 러시아 고유의 선법과 민요, 대담한 화성과 변칙적인 리듬 등의 기법은 근대 인상파 음악의 선구자인 클로드 드뷔시를 비롯해서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 하차투리안 등 많은 후배 러시아 작곡가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세기말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국민악파 5인조의 중 한 사람으로 활약하며 러시아 음악에 고유한 색채를 입히는 등, 가장 독창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음악가다.

조윤수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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