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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한다

정성직 기자 | 2018-07-01 13:08:47


▲윤국진(대전교육과학연구원 원장)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의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 좋은 습관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이다. 세 살 무렵에는 아이들이 어른의 말을 고분고분 듣기보다, 자주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린다. 무엇이든 제가 한다고 하고, 제 맘에 들지 않으면 우선 드러눕고 본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어른들의 애를 더 태운다. 이 무렵 아이들을 서양에서는 미운 두 살(terrible twos)이라고 부른다.

세 살 무렵은 자기중심성이 고조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제 막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으며, 집안에 '자기 것'이 있고, TV채널을 선택할 수 있으며, 어른들이 하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 가족들의 관심은 자신에게 집중되고, 대부분의 행동이 허용되며, 행위 뒤에 대개는 감탄과 칭찬이라는 피드백을 받게 된다. 어쩌다 무엇인가 거부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울고 앙탈하면 만사 해결되는 경험도 반복해서 하게 된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기중심성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중심성은 세상에 대해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고, 자기주도성의 바탕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다. 세 살 버릇을 걱정하는 것은 자기중심성이 독선이나 반사회성에 머무르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마음과 처지를 이해하고, 여럿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몫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고 분별 있게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유아의 그러한 초보적 사회화 과정을 속담에서 '세 살 버릇'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 살 버릇은 가족의 훈육과 함께 많은 부분 또래와의 놀이를 통해 형성된다. 또래들과 놀이를 할 때에는 자신의 행동이 거부되기도 하고, 실패와 패배를 경험하고, 때로는 집단에서 외면당하기도 한다. 처음 몇 번은 그런 부정적인 상황에 직면하면 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울고 떼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런 상황을 곧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놀이라는 행위 자체가 꾸며진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모든 놀이는 어떤 상황을 가정해 스토리를 만들거나 규칙을 정한다. 이 허구의 세계에서는 성공이나 실패, 승리와 패배 또한 꾸며진 상황이다. 수용과 거부도 허구의 상황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서 유아들도 그런 불편한 상황을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거부와 외면, 실패와 패배를 반복 경험하면서 남과 만나고 함께 지내는 연습을 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고, 남들의 생각과 행동은 나와 다르며, 그들에게 거부될 수도 있고, 때로는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의도가 실패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받아들이게 된다.

놀이는 자신을 이해하는데도 유용하다. 놀이를 하면서 한 차원 높은 자신도 발견하게 된다.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놀이는 무엇인지 알게 되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남이 좋아하는지 깨닫게 되며, 남들보다 모자란 능력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또래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고, 관심 받기 위해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세 살 버릇'은 이 시기에 한 인간이 반드시 습득하고 넘어가야 할 사회적 품성의 절실함을 은유하는 말이다. 또래 놀이는 그 시절에 필요한 거의 모든 사회적 품성을 기를 수 있는 유용하고 대체하기 어려운 성장 자원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조절하는 능력까지 기를 수 있는 인간의 사회화 종합 선물세트가 곧 놀이인 것이다.

윤국진(대전교육과학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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