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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 어느 외과의사의 문상(問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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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2-13 17:28:21
     

 


이른 아침, 문자메시지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친구 어머님의 부고를 전하는 메시지였다. 오랜 투병생활로 고생만 하시더니만……. 이런 탓인지 나이를 들어가면서 무덤덤해지기는커녕 갑작스런 전화나 생소한 번호의 전화에도 덜컥 겁을 집어먹곤 한다. 휴대폰을 꺼놓고 사는 게 속편하지 싶지만 직업이 외과의사이다 보니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함께 일하는 동료의사에게 양해를 구한 뒤 일찍 문상 길에 올랐다. 밤새 눈이 쏟아질 거라는 일기예보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사람 저 사람들과 맞닥뜨리는 불편함이 싫어서 였다. 퇴근하고서야 얼굴들을 들이밀 테니 서둘러 문상을 마치면 지인이나 동문과 마주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속내에서였다. 상주만 보면 그만이지 굳이 이 사람 저 사람과 객쩍은 대화를 섞어야 할 이유라곤 없는 게 아닌가. 친구나 지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리라면 사족을 못 쓰던 예전의 내가 맞나 싶다. 문득문득 내 자신조차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런 것도 노화현상의 한 증상인지 모르겠다. 더없이 참담한 표정으로 영정 앞에 다가선 나는 가벼이 목례를 하고는 몸을 구부려 국화를 영정 앞에 올려놓은 후 무릎을 꿇고 향에 불을 붙인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한동안 고개를 수그린 채 묵념을 올리다가는 상주들과 맞절을 하며 참담한 심정과 위로의 말을 건넨다. 이후 빈소 한켠에 마련된 식당으로 가 자리를 잡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에 밴 익숙한 동작들. 그러고 보니 결혼식장에 다녀온 기억이 까마득하다.

이른 시간인 탓에 문상객은 적었고 식당 역시 빈자리가 눈에 많이 띄었다. 구석진 자리로 찾아들어간 나는 날라져온 음식을 먹으며 상주인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이야기 중간 중간 친구는 문상객을 맞으러 자리를 떠야했다. 그렇게 자리를 뜨곤 하던 친구가 어느 순간 문상객 한 사람의 손을 이끌고 내 쪽으로 향하며 반가운 내색을 했다. "우리 1년 후배, 알지?"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선배님?" "이런 자리에서야 만나게 되네. 잘 지내지?" 신경외과를 전공한 후배라는 것만 알 뿐 그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다. 내가 레지던트 1년 차 때 인턴이었을 테고 그렇다면 훌쩍 25년이 세월이 흘렀다는 얘긴데, 묘하게도 얼굴만큼은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뭐하면서 지내?" 마주보고 앉았지만 딱히 할 말도 없던 터라 어색함도 무마할 겸 던진 질문이었다. "모르고 있었어? 대학병원 신경외과 과장이잖아." 곁에 앉아있던 상주인 친구가 거들고 나섰다. 신경외과 과장이라는 말에 나는 살짝 주눅이 들었다.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이라면 그야말로 신(神)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런 존재에게 단지 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도 훌쩍 2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스스럼없이 말을 놓고 있는 것이라니. 그렇다고 갑작스레 말을 높이자니 그것도 영 아닌 것 같아 나는 간간이 존댓말을 섞어가며 엉거주춤 말을 이었다. "부럽다니요, 선배님. 다 옛날 얘기고 그야말로 죽을 맛입니다. 대학병원 신경외과에 1년차 레지던트가 없다면 말 다했지 뭡니까." "1년차 레지던트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에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습니다." 격무와 응급상황에 시달리는 외과가 기피대상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달랑 1명을 뽑는 신경외과 1년차 자리마저 공석이라니, 쉽사리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럼 드레싱이나 회진준비는 누가 하고, 입원해 있는 환자에게 덜컥 문제라도 생기면……?" "드레싱은 전담간호사가 하고 저희 교수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는 형편입니다." 나 역시 외과의사인지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대학병원의 신경외과에서 달랑 1명의 레지던트도 채우지 못한다는 현실 앞에서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을 다루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가 외면당하고 푸대접을 받는다는 거야 진즉에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삼십분 남짓 앉아있던 나는 상주인 친구와 인사를 나눈 뒤 자리를 떴고 후배 역시 일이 있는 양 자리에서 일어섰다. 장례식장에서 밖으로 나오자 시커먼 하늘에서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몸도 마음도 무겁기 그지없었다. 문상을 두 군데 다녀오기라도 한 것인가. 남호탁 수필가·예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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